생각 줄서기 게임이 있다. 내가 생각 강의할 때 첫 시간에 항상 이 게임을 먼저 한다. 규칙은 이렇다. 10명이 앞으로 나와 일렬횡대로 선다. 1에서 45까지 숫자 중 임의의 숫자 10개를 골라 포스트잇에 하나씩 적어서 10명의 등에 붙인다. 그리고 이렇게 주문한다. “번호 순서대로 빨리 다시 서세요. 다 섰으면 다같이 ‘완료’를 외치세요. 다른 조건은 하나도 없습니다. 시간을 재겠습니다. 지금부터 시, 작!”

첫 번째 도전을 시작하면 다들 어리둥절한다. 몇 초 머뭇거리다 한두 명이 뒤로 한걸음 물러선다. 이들은 리더가 되어 다른 사람 등에 붙은 포스트잇 번호를 보며 이리 가라 저리 가라 외친다. 사람들은 뭘 어떻게 할지 모른 채 꽃게처럼 왼쪽 오른쪽 왔다 갔다 한다. 리더는 답답해서 목청을 높인다. 사람들은 웅성웅성하면서 리더의 뜻을 따르기로 한다. 어떤 사람은 여전히 자기가 왜 그 자리에 서야 하는지 몰라 머리를 갸우뚱한다.

이것이 리더의 시대다. 오직 리더만이 사람들의 등에 붙은 번호를 볼 수 있고 그들만 정보를 가진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결코 20초 이내에 줄 설 수 없다. 사람이 늘면 늘수록 리더가 많아지고, 그 리더의 리더가 또 생긴다. 정보는 불확실해지고 사람들은 혼란스럽다.

두 번째 도전을 하기 전에 작전 시간을 1분을 준다. 사람들은 첫 번째와 다른 방법을 논의한다. 시작을 외치면 사람들은 옆 사람의 등 번호를 불러주면서 자기 자리를 찾기 시작한다. 하지만 자기 자리를 정확히 찾으려면 계속해서 옆 사람의 등을 보고 번호를 외쳐야 한다. 마주 보고 등지고 이동하고 마주 보고 등지고 이동하고 하면서 시끌벅적하다. 어떤 사람은 번호를 잘못 보고 엉뚱한 숫자를 외치고, 어떤 사람은 숫자를 잘못 듣고 엉뚱한 곳으로 간다.

이것이 혼란의 시대다. 혼란의 시대에는 리더가 없다. 누가 리더고 누가 팔로워인지 모른다. 소통의 양은 늘었지만 효율이 낮다. 자리를 정확히 찾으려고 시행착오를 여러 번 거친다. 간혹 첫 번째 도전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리기도 하지만 보통 10초대를 기록한다. 사람이 20명, 30명으로 늘면 확실히 리더의 시대보다는 빠르다.

마지막 세 번째 도전을 하기 전에 또 한번 작전 시간 1분을 준다. 이제 사람들은 뭔가 의심하고 의문을 품다가 1분이 채 되기 전에 내게 질문한다. “무조건 번호 순서대로만 서면 됩니까? 다른 조건은 정말 없습니까?” 나는 대답한다. “이미 말했습니다. 다른 조건은 없습니다.” 사람들은 뭔가 깨달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시작과 함께 자기 등의 포스트잇을 떼서 번호를 본다. 자기 번호가 5번이면 아무 말 없이 0번대 위치로 이동한다. 28번이면 20번대 위치로 간다. 그곳에서 옆 사람의 포스트잇을 같이 보면서 자리를 옮긴다.

이것이 생각의 시대다. 모두가 스스로 정보를 찾는다. 자기 등에 붙은 번호를 다른 사람이 부르지 않는다. 스스로 포스트잇을 떼서 번호를 본다. 자기가 설 자리를 생각해서 이동한다. 그곳에는 서로에게 도움 되는 정보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번호를 보고 듣고 이해하면서 정확한 자리를 찾는다. 이렇게 해서 길어도 5초, 짧게는 2초 안에 줄을 선다.

리더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생각의 시대가 다가온다. 정답이 있던 시대에는 리더가 누구보다 먼저 정답을 알아내서 조직을 이끌었다. 리더는 지도를 가진 지도자로서 조직이 가야 할 방향과 속도를 알았다. 이것을 모르면 리더가 될 수 없고 리더의 자리에 앉았더라도 오래가지 못했다.

리더가 잘못된 지도를 보거나 지도를 잘못 보고 조직을 몰락의 구렁텅이로 인도할지라도 팔로워는 리더만 따르면 되었다. 그렇게 같이 무너지더라도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리더를 의심하거나 의문을 품거나 질문을 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리더가 지도를 얻은 방법은 철저히 비밀에 붙여졌다. 리더에겐 리더의 덕목이 있었고 팔로워에겐 팔로워의 덕목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 정답이 없는 시대가 왔다. 정답이 없으니 갈 곳이 없고 갈 곳이 없으니 지도가 필요 없다. 리더가 가진 지도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어서 팔로워에게 더 이상 방향과 속도를 알려주지 못한다. 리더나 팔로워나 모두 같은 곤경에 빠졌다. 팔로워를 이끌지 못하는 리더, 리더를 따르지 못하는 팔로워는 결국 스스로 길을 찾아야 한다.

그들은 마침내 스스로 생각을 한다. 모두가 길을 찾기 위해 생각한다. 주어진 문제와 형편을 곰곰이 따져서 각자 설 위치를 찾아 이동한다. 이들은 더 이상 리더나 팔로워가 아니라 주도자로 변한다. 자기 생각의 주인이 된다. 끊임없이 주변 사람들과 소통하고 정보를 공유하면서 조직이 가야 곳에 이른다. 어차피 정답은 없다. 그곳은, 조직이 스스로 만들고 모두가 동의한 해답이다.

정답이 있던 시대에는 강한 정신력만 있으면 살았다. 리더가 지정한 목표를 향해 아무 생각 없이 돌진하여 쟁취하면 그만이었다. 리더가 시킨 대로 기존에 하던 대로 그렇게 열심히만 하면 살았다. 하지만 정답이 없는 시대에는 모두가 세상의 변화를 감지해야 산다. 스스로 일을 만들고 나만의 해답을 찾아야 한다. 옆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 관찰하고 내가 가진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 그러려면 생각을 해야 한다. 내가 무엇을 알고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 어디로 가고 누구와 소통해야 하는가? 어떻게 일을 하고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생각이 리더의 몫이었던 시대는 끝났다. 모두가 리더처럼 생각해야 한다. 모두가 자기 나름의 해석을 내려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이렇게 찾은 수만 가지 해답이 서로 다투고 겨루고 풀고 이으면서 미래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생각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

아쉽게도 우리는 단 한 번도 생각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오직 정답을 외우는 데만 급급했다. 보통 직장인이라면 리더십, 팔로워십, 문제해결, 창의력, 기획력, 커뮤니케이션, 통찰력 같은 것을 하나쯤은 배웠다. 그러나 배울 때만 기억하고 돌아서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니 아무리 창의력을 배워도 창의적이지 못하다. 아무리 문제해결 기법을 배워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이 모든 역량의 바탕인 ‘생각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이제 생각하는 법을 배울 때다. 생각하는 법을 모르고 역량만 키워 달리던 때는 지났다. 물리적 효율은 100에 이르고 한계 비용은 0에 닿는다. 효율의 한계를 뛰어넘고 비용을 플러스로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생각이다. 하지만 천재만이 이런 생각을 해내는 것은 아니다. 생각하는 법을 배우면 누구든지 제대로 생각할 수 있다. 누구든지 위대한 생각을 해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