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가 하는 일의 반은 질문이고 나머지는 결정이다. 질문의 반은 정말 몰라서 묻는 것이고 나머지는 욕하기나 혼내기나 가르치기가 변형된 것이다. CEO가 몰라서 묻는 것을 누가 탓하랴. 문제는 그렇게 물은 뒤 누가 답하면 그걸 다르게 이해하는 데에 있다.

CEO의 뇌는 무척 빠르다. 생각의 속도가 남다르다. 그런 사람이 CEO가 되고 CEO가 되면 빠른 생각을 강요당한다. 그래서 CEO는 생각을 빨리한다. 그러니 누가 답을 주면 그 답을 빨리 이해하려고 한다. 무언가를 이해하는 가장 빠른 길은 이미 머릿속에 있는 생각과 묶어버리는 것이다. 경험이 대표적이다. 요즘 전사 워크숍에서 뭘 하면 직원들이 좋아하느냐 물어서 인사팀장이 활동적인 게임이 좋답니다 하고 대답했을 때 CEO는 그와 유사한 경험을 생각해낸다. 그리고 대뜸 이렇게 내뱉는다. “그거 전에 내가 해봤는데 힘만 들고 재미는 없던데?”

인사팀장이 뭔 죄인지는 모르겠으나 인사팀장이 질문을 받았을 때의 생각과 CEO가 대답을 들었을 때의 생각은 확실히 다를 것이다. 인사팀장은 질문을 받고 곰곰이 따졌을 게다. 상대는 내 목줄을 잡은 CEO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아무거나 내뱉어도 무사한 상대가 아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머릿속에서는 온갖 워크숍 활동을 떠올리고 분석하고 평가하고 선정했을 게다. 그리고 나서 대답을 했을 것이고 대답하면서도 역질문을 생각하고 근거도 짜냈을 것이다. 단지 이런 생각이 너무 빨리 진행되어서 자기조차도 따라잡지 못했을 뿐이다. 이게 곰곰이 따지는 생각 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EO는 대답을 듣자마자 활동적인 게임과 비슷한 것을 했던 과거 사례를 발상해내고는 그때의 느낌도 함께 끄집어낸다. 그게 정확히 무엇이었고 왜 그렇게 했고 뭐가 유익하고 뭐가 불만이었는지는 잘려나가고 남은 느낌 한두 개… 아… 그때 힘들었지 하는 느낌만으로 대답을 해버린다. 이게 퍼뜩 떠오르는 생각 상이다.

CEO는 의사결정을 한다. 여기서 ‘사’는 곰곰이 따지는 생각이다. 의사결정은 할지 안할지 곰곰이 따져서 결정하는 것이다. 문득 떠오른 생각이 좋아서 또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기분 나빠서 결정해 버리는 것은 의사결정이 아니라 의상결정일 터다. 아무도 의상결정이라 하지 않는다. 그렇게 결정하는 것이 얼마나 바보스러운가.

CEO더러 의사결정하라고 인사팀장보다 더 많은 돈을 주고 권한도 줬는데 의상결정하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CEO는 늘 직원이 생각 없이 일한다고 탓하는데 정작 자신은 얼마나 꼼꼼이 따지는가.

직원 형편에서 보면 곰곰이 따지면서 늦게 결정하는 CEO를 꺼려한다. 똑똑하고 멍청하고 부지런하고 게으름으로 나누는 똑게 똑부 멍게 멍부처럼 CEO도 퍼뜩 생각하고 퍼뜩 결정하는 퍼퍼, 퍼뜩 생각하고 곰곰이 결정하는 퍼곰, 곰곰이 생각하고 퍼뜩 결정하는 곰퍼, 곰곰이 생각하고 곰곰이 결정하는 곰곰으로 나뉘겠다.

나는 퍼퍼인가 곰곰인가? 퍼곰인가 곰퍼인가? 나는 퍼뜩 떠오른 생각으로 질문하고 퍼뜩 떠오른 생각으로 결정하는가? 나는 곰곰이 따지는 생각으로 질문하고 곰곰이 따지는 생각으로 결정하는가?

나는 생각하는 CEO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