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카드 12장 세트를 OPP에 넣어 아는 분들께 드렸더니 뭐에 쓰고 어떻게 쓰냐고 물으시는데 딱히 할 말이 없어서 ‘저도 몰라요. 그냥 만들어 본 거에요.’…

정말 딱히 어떤 목적을 가지고 만든 것이 아니다. 그냥 요즘 하도 생각을 많이 하고 생각 강의도 하고 생각게임도 만들다 보니 생각카드 하나 있으면 구색이 맞겠다 싶었다. 200세트가 최소주문이고 한 세트 12장밖에 안 돼서 그리 주문했고 원가 부담도 없어 막 드린다.

정말 그냥 만든 것이다. 가끔 그냥 만드는 것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도 살면서 꼭 어떤 목적이나 동기가 없이 하는 행동도 많다. 너 왜 그랬냐? 물으면

걍.

난 이걸 이제부터 ‘걍’ 방법론이라 부르겠다.

걍 방법론은 4단계로 이뤄진다.

첫 단계는 생각하기 단계다.
이 단계는 내가 평소에 생각하는 것을 생각해내는 단계다. 내가 만들고 싶은 것, 내가 고민하는 것, 나를 힘들게 하거나 괴롭히는 문제,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아 떠도는 생각 념이다. 언제부턴가 늘 머릿속에 떠돌기 때문에 오히려 쉽게 생각을 잡을 수 있다. 그 생각을 잡는 것이 생각 단계다. 즉 오롯이 나를 위한 것이다.

둘째 단계는 행동하기 단계다.
이 단계는 앞 단계의 생각을 실현시키는 단계다. 만약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면 지금 바로 전화하거나 찾아간다. 어떤 제품이라면 지금 바로 만든다. 생각을 따지거나 되짚거나 하지 않는다. 걍 생각한 대로 행동하고 생각한 대로 실현시킨다.

셋째 단계는 공유하기 단계다.
이 단계는 앞 단계의 결과나 산출물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단계다. 제품을 만들었으면 다른 사람에게 그냥 주거나 무료로 사용케 한다. 사람을 만났다면 인스타에 사진을 올린다. 문제가 풀렸다면 그 과정이나 공식을 페북에 올린다. 어떤 것도 숨기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다른 사람과 공유한다.

마지막 단계는 의견듣기 단계다.
이 단계는 공유하기를 하면서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는 단계다. 내 제품이나 서비스를 경험한 사람들은 반드시 어떤 의견이나 지식이나 통찰을 전해준다. 그게 아니더라도 나 스스로 공유하기를 하면서 사람들의 비언어적 반응으로 의견을 수집할 수 있다.

요즘 뜨는 린방법론이나 디자인씽킹과는 근본부터 다르다. 린과 디자인씽킹은 다른 사람의 생각에서 시작한다. 자기 비즈니스가 아니다. 일종의 외주다. 머리를 잠시 빌려주는 것과 같다. 자기가 원한 것 자기가 하고 싶은 것 자기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디른 사람이 원한 것 고객이 원한 것 발주처가 원한 것을 만들거나 기획하거나 실행하는 것이다. 이것은 을의 비즈니스고 을의 생각이다.

걍 방법론은 갑의 비즈니스고 갑의 생각이다. 처음부터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시장 분석이나 공감하기 따위는 필요없다.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을 그냥 만드는 것이다. 나를 수년간 괴롭혀 온 문제를 푸는 것이다. 내 가족이나 내 친한 친구의 고민을 해결하는 것이다. 그래야 내 마음이 불편하지 않다.

그러니 스스로 주도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최선을 다한다. 온 정성을 쏟는다. 그렇게 몰입해서 만들어내거나 그냥 재미있겠다 싶어 만들어내면 결국 어디선가에서 손을 내민다. 이노마드란 스타트업은 흐르는 강물에서 약한 전력을 만들어내는 디바이스를 만든다. 청계천에서 몇 번 실험도 했다. 대표는 몇년 전부터 이런 제품을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교수들을 찾고 동료를 찾아서 기어이 제품을 만들었다. 우리나라 어느 기업도 어느 기관도 눈여겨보지 않았다. 그래도 계속 실증하고 제품을 발전시키고 미국 크라우드펀딩사이트 킥스타터에도 올렸다. 반응은 미국에서 왔다. 미국은 1~2주의 오지 캠핑을 많이 가는데 그때 사용할 충전기가 필요하단다. 이노마드의 제품이 딱 필요하단다. 그래서 미국에 진출한다.

스타트업을 돌아다니다 보면 이런 사람을 많이 본다.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나 시장 수요를 보고 제품 만들다 실패하고 결국 자기가 잘하는 것 관심있는 것 어릴 때부터 만들고 싶었던 것을 마지막 사업 아이템으로 정한다. 이렇게 성공한 사람이 많다. 스티브 잡스도 그렇다. 아이디어나 창의성이 아니다. 그는 단지 자기가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었을 뿐이다. 12년전 프리챌은 20대 후반의 젊은 사람을 대표 자리에 앉혔다. 그는 팀장 이상이 모인 자리에서 커뮤니티 프리챌을 엔터테인먼트 프리챌로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그 도전은 실패하고 프리챌은 문을 닫았다. 하지만 그 CEO는 자기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온라인 카지노 서비스를 만들어 테란의 황제 임요환 등과 함께 해외에서 서비스를 했다. 그리고 얼마전 이 회사는 코스닥에 등록되었다.

CEO는 결국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 자기가 꿈꾸던 것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남들이 왜 그걸 하냐고 물으면 할말이 없다. 설득하기도 어렵고 논리적으로 풀어내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들이 보면 그건 그냥, 그러니까 걍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세상은 걍 발전했다. 누구도 세상을 이렇게 계획하지 않았고 누구도 조종하지 않는다. 세상은 걍 돌아간다. CEO라면 걍 하라. 어차피 당신이 걍 하는 것을 돕기 위해 회사가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