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이든 대기업이든 CEO의 고민 2위는 ‘오늘은 뭐 먹을까’다. 1위는 ‘누구와 먹을까’다. 이런 CEO와 가까이 있는 사람(주로 임원이거나 본부장이거나 기획팀장일 터)의 고민 2위는 ‘누구와 먹을까’다. 1위는 ‘CEO는 누구와 먹을까’다.

누구나 CEO의 점심에 관심있다. 누구랑 먹는지 궁금하다. 내가 같이 먹어줘야 하는지 궁금하고 나 말고 누구랑 먹는지 궁금하고 나랑 먹자 할지 궁금하고 나만 빼고 다른 사람이랑 먹을지도 궁금하다. CEO도 궁금하다. 누가 점심 약속이 없는지 궁금하고 내가 밥 먹자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고 나 빼고 다들 어디 가서 먹는지 궁금하고 내가 밥 안 먹고 있으면 누가 밥 먹었냐고 물어볼까 궁금하다.

한때 벤처기업에 있으면서 나는 당시 CEO에게 못된 소리를 많이 했다. 점심만 되면 나가서 고객이랑 밥먹으라 하고 CEO 빼고 직원끼리만 홀랑 밥 먹으로 나갔다. 가끔 사무실에서 좀 떨어진 편의점에서 혼자 삼각김밥 먹는 걸 몇 번 봤다. 그럼에도 나는 CEO와 한 달에 한두 번만 점심을 같이 먹었다. 그와 밥 먹는 게 싫어서가 아니다. 밖으로 나가서 네트워크를 넓히라는 주문이었다.

요즘 스타트업 CEO를 보면 밖에서 사람 만나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 원래 요즘 스타트업이 혼자 빡쳐서 만들기도 하고 기술이나 연구 쪽 출신이기도 하다 보니 대기업 영업맨을 부사장 자리에 앉혀서 밖으로 돌리기도 한다. 그러면 부사장은 늘 밖에서 고객과 밥 먹고 CEO는 늘 안에서 공동창업자와 밥 먹는다.

대기업 CEO라고 다를 바 없다. CEO와 밥 먹고 싶은 사람은 회장님밖에 없다. 제 아무리 영업맨 출신 CEO라 해도 CEO가 되는 순간부터 그와 밥 먹는 자리는 불편과 인내의 자리가 될 수밖에 없다. 터놓고 편하게 먹자 따위의 말은 CEO에게 해당하는 거지 직원에게는 멸치 대가리만도 못한 소리다.

그래서 CEO의 조활비는 항상 직원과 밥 먹을 때 쓴다. 밥이라도 안 사주면 직원 입을 삐죽 나온다. ‘내가 이 귀중한 점심 시간을 당신에게 허비했으니 당연히 밥값은 CEO가 내시오’한다. 근데 그 돈은 어차피 모든 직원이 N분의 1 한 것이다. 운이 좋다면 월급이나 포상이나 상여로 나올지도 모르는 돈이다. 그러니 CEO에게 밥 먹자 청해서 비싼 밥 많이 얻어먹으면 결국 자기 몫을 찾아먹는 거와 진배없다. 하지만 직원은 똑똑하다. 겨우 몇 천원짜리 점심에 영혼을 팔지 않는다. 몇 만원짜리 호텔 요리면 몰라도.

호텔 요리. 좋다. 이거다. 어중이떠중이 모아서 밥 먹으면 기본 몇 만원이다. 밥 먹는 사람의 수와 대화의 질은 반비례한다. 4인 테이블에서조차도 질 높은 대화는 어렵다. 속 시원한 대화는 꿈도 못 꾼다. 어차피 진지한 대화도 못하고 돈은 돈대로 들 것 같으면 그냥 1명만 조져라.

딱 1명만 데리고 비싸고 근사하되 심심치 않은 곳을 데려가라. 한적한 교외도 좋고 고급 레스토랑 별실도 나쁘지 않다. 다만 대화의 실마리가 있는 곳을 가라. 미술작품이 근사하게 걸린 곳이나 통기타를 연주하는 곳 또는 좋은 음식을 내놓거나 음식 이야기가 가능한 곳 다트던지기 같은 간단한 게임이 가능한 곳 그런 데서 부드러우면서도 깊은 대화를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