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사람들은 참 말이 많다. 특히 밥 먹을 때는 서로 말하려 해서 한번은 모래시계를 돌리면서 차례를 정하고 말한 적도 있다. 그때도 다들 말을 꾹꾹 눌러 애써 참다가 모래가 다 빠지기도 전에 냉큼 모래시계를 낚아채서 뒤엎는다.

하물며 CEO는 얼마나 말을 하고 싶겠는가. 입이 근질근질하다. 한 순간도 마땅한 것이 없으니 할 말이 많다. 입이 어눌하거나 다른 생각에 빠져서 말을 천천히 하거나 잠시 멈춘 것뿐이지 속으로는 벌써 원고지 10장을 읽었다.

이런 CEO더러 경청이라니? 경청하라니? 경청이 미덕이라니?

자고로 경청은 아랫사람의 덕목이지 윗사람의 덕목이 아니다. 할말을 못하고 아랫사람 말만 듣고 아랫사람에게 결정하라 하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행태는 윗사람이 할 짓이 못된다. 윗사람이 될수록 자기 생각을 똑 부러지게 몇 번이고 말해야 한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말해야 한다. 아무말대잔치라도 벌여야 한다. 그래야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그저 이것도 흥 저것도 흥 하면 복심이 뭔지 코드가 뭔지 아랫사람끼리 서로 묻고 답하며 오해가 쌓이고 눈치만 는다.

아랫사람 말에 경청하라 해서 아랫사람이 보고하는 동안 한마디도 아니하다가 느닷없이 잘 모르겠으니 당신들이 결정하라거나, 한참을 듣고는 잘 들었다고 휙 가버리는 CEO의 뒷모습을 보면 대체 저 자리는 귀만 뚫으면 앉는 자린가 싶다.

생각이 없으면 말이 없다. 생각이 넘치는데 말이 없으면 글이라도 쓴다. 안 그러면 속 터져서 못 산다. 생각이 없으니까 말이 없고 말이 없으니 듣기만 한다. 회의하다 보면 아무말없이 듣기만 하다 갑다기 누가 말해보라 하면 깜짝 놀라서 생각을 시작한다. 그래봤자 나오는 건 퍼뜩 떠오른 별 쓸모없는 생각이 다다.

CEO가 경청하라는 건 조용히 잘 들으라는 게 아니다. 경청의 경은 머리를 기울인다는 뜻이다. 머리를 기울여서 들으란 듯이다. 머리를 기울인다는 말은 생각하면서 들으란 뜻이다. 생각하면서 들으면 반드시 중간에 말이 튀어나오게 돼 있다. 궁금하면 질문하고 의심스러우면 확인하고 말이 안된다 싶으면 따지고 쓸모없는 말이다 싶으면 손을 내젓게 돼 있다. 근데 이런 반응없이 잘 들어주기만 하는 것은 경청이 본디 뜻한 바가 아니다.

게다가 CEO는 아랫사람이 말할 때 언제든 멈추고 끼어들 수 있다. 말이 다 끝맺기를 기다려서 Q&A시간을 노릴 필요도 없다. 아무 때고 말을 꺼내면 된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지나친 경청 의견과 조언과 주장에 CEO의 입은 자물쇠가 된다. 한마디한마디 말조심이 지나쳐서 침묵이 생각을 잡아먹는다. 사람의 생각이 언어로 몸으로 표현되고 또 되돌아와서 생각이 되는데 그 이치가 끊겼다.

쫄아서 그렇다. CEO가 아랫사람에게 쫄아서 그렇다. 점심시간에 아랫사람에게 밥먹으러 가자는 말도 쫄아서 못한다. 사태가 심각해도 긴급회의를 소집하지 못한다. 아랫사람 말에 경청하고 직원을 배려하고 고객과 공감하더니 속으로 쫄아들기만 한다. 카리스마가 지나친 CEO도 문제지만 속좁고 말없는 CEO는 더 문제다. 아랫사람이 CEO 눈치 보는 게 아니라 CEO가 아랫사람 눈치 본다. 눈치 보니 결정이 더디다. 생각이 느리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우공이 산을 옮긴다는 우공이산에서 우는 어리석을 우다. 원래 우란 글자는 옹과 마음 심이 합한 건데 옹은 긴꼬리원숭이나 나무늘보를 말한다. 나무에 매달려서 말도 없고 움직임도 없다. 너무 느릿느릿해서 생각마저 느리다. 그래서 느릿느릿한 것이 어리석다는 듯이 되었다. 옛사람이 보기에 느린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우공은 나이가 많은 노인이다. 그러니 우공이산은 어리석은 사람이 산을 옮긴다가 아니라 느릿느릿하게 움직여서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 꾸준함과 끈기를 뜻하는 고사성어다. 이것은 누구에게 하는 말인가? CEO에게 할 조언인가? 신입사원에게 할 조언인가?

우공은 결코 자기 힘으로도 자기 자손의 힘으로도 산을 옮기지 못했다. 천제가 산을 반으로 잘라 다른 데로 옮겼다. 천제는 우공이 산을 옮기겠다 하니 그걸 조용히 보기만 하지 않았다. 머리를 기울여 우공의 속뜻을 묻고 우공의 의지를 확인하고 산을 옮길 곳을 찾으라 명령하고 직접 산을 옮겨다. 우공은 결코 천제에게 말하지 않았다. 천제가 스스로 우공에게 물은 것이다. 이것이 경청이다. 직원더러 고민 있으면 사장실에 찾아오라 내가 다 들어주겠다 하는 것은 잘못돤 경청이다. 그따위 경청은 개나 줘 버려라.

CEO는 우공인가 천제인가?
당신은 우공인가 천제인가?